잃어버린 소(所 or cattle)를 찾아서 - 희망제작소 간판 수난기

간판, 없어지다

2008년 6월 10일이었다.
희망제작소 채널간판 중 '소'가 없어진 날은.
(채널간판은 글자 간판을 뜻한다. 업계에서는 '잔넬'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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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가 사라진 희망제작소 간판. 어떤 이는 이참에 '희망제작중'이라는 동적인 이름을 붙이자고 했다.


희망제작소, 이름 이야기

희망제작소는 민간싱크탱크이다.
싱크탱크 앞에 '민간'이 붙는 이유는
이곳이 정부산하 연구소도 기업산하 연구소도 아닌
시민사회에 기반을 둔 독립적인 연구소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희망제작소(希望製作所)는 씽크탱크를 표방하는 곳의 이름으로는 조금 특이하다.
이 곳을 알지 못하는 외부인사와 통화하게 될 때면

"네? 무슨제작소라구요?"

라는 질문을 듣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택배를 보낼 때 수신지를 '희망세탁소'라고 쓴 사람도 있다.
전화로 듣기에 '희망제작소'가 너무 거창한 이름이었거나,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희망세탁소 사건'은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희망세탁소'라는 장소의 소박함과
'희망제작소'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포부 사이의 간격이 웃음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추적, 잃어버린 소(所 or cattle)

그런데 왜!
누구를 해코지 했을 것 같지 않은,
이 사회에 희망을 만들어 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진
희망제작소의 간판이 없어졌을까?
그것도 하필 '소'자가(만)?

정황은 이렇다.
2008년 6월 10일, '명박산성'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날이었다.
'명박산성'은 연일 수천명, 수만명씩 모여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을 막기 위해
경찰(정부)이 세운 신종 바리케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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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티즌들은 세종로 사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바리케이드에 명박산성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날 '명박산성'은 광화문과 안국역 두 군데에 설치되었다.
                                                                                          (사진 출처 : 한국어 위키백과)
  

서울 한복판, 광화문과 안국역 두 군데에 2층으로 세워진 이 바리케이트는
역사상 유례 없는 구조물로 6월 10일 서울시를 가득 메운 70만명으로부터
청와대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2008년 5월 2일부터 이어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학교 자율화 반대'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등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한 반대와 맞물리면서 80%에 달하는 시민(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고, 한 달 넘게 매일 지속되었다.

밤샘 집회의 규모가 계속 커지자 경찰은 강경한 대응(물대포,방패진압)을 하고
정부와 여당은 시위대를 불법/해충/배후세력 등으로 몰아붙이면서 저항은 더욱 거세졌었다.  

그러던 중 다시, 6월 10일이라는 기억할 만한 날짜(memorial day)가 다가온 것이다.
87년 6월 항쟁 21주년을 맞아 광화문은 전 세대, 전 계층에서 쏟아져 나온 70만명의 시민들로 가득찼다.
양희은씨는 연단에 나와 '다시' 한국현대사의 민주화 터널마다 울렸던 '아침이슬'을 불렀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이 부르세요~" 이렇게 우리를 추어주면서 말이다.

시민들은 정부가 소통을 거부하는 방식에 실망하고 분노함과 동시에 '명박산성' 앞에서 시민들끼리 저항의 축제를 만들었다. 1인 미디어의 생산자로서 수많은 토론, 패러디를 만들어 내고 직접 시위를 중계하면서 유희하듯 정치행위를 하던 21세기 촛불시민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광장에 모인 70만 명의 사람들은 이 날, '권위주의(군부독재) 정부'에 저항해 민주화를 이뤄낸 이전 세대(시간)와 접속했고, 보다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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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candlelight rally) 이야기가 길어졌다.

(희망제작소 간판 유실사건이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 발생했던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다보니..)

우리는
안국역 사거리에서 더 이상 청와대로 행진하지 못하고 자유발언, 랩, 노래를 하던 시위대가
'소'자를 발견하고는 떼어간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어~ 저기 우리를 이렇게 거리로 나오게 만든 소가 있네. 떼어버리자."

하긴
청와대를 향한 그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희망제작소의 '소'자로 일순간에 레이저빔처럼 집중됐다면
그 기운만으로도 저절로 떨어졌을 것이다.

(6월 20일 열린 '좋은시장학교' 입학식을 취재해간 연합뉴스 보도영상에 안타깝게도 '소'자가 유실된 희망제작소 간판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MPIC/YIBW_showArticleMPICPopup.aspx?contents_id=MYH20080627000400355)



그렇다면, 진짜 소(cattle)를 붙이자

우리는 희망제작소 간판의 수난이 이 혼란스러운 시국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보고
이를 상징 및 기념하기 위해 진짜 소(cattle) 모양의 실물간판을 만들어 붙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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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제작소의 그린디자이너 김진수씨가 디자인한 소.
                                                       내부 행사인 좋은시장학교(6월20일)를 대비해서 급조했기 때문에 두꺼운 종이에 출력했고
                                                                      뒤의 기둥은 스티로폼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2008년 6월 20일.
 


이후에도 촛불시위는 계속되었다.
어떤 토요일엔 전경들이 건물 주차장을 다 점거해버려서 가로로 누운 방패를 하나씩 넘어가야 할 때도 있었다. (오!맙소사! '전경방패장애물넘기'라니;) 스스로 촛불시위 참여자이기도 한지라 도열하고 있는 전경들을 매일 마주치며 "아, 이민 가야겠다"라고 혼잣말을 주억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미친소 국면'은 이어졌고
장마철을 이기지 못한 종이 소(cattle)는 또 떨어졌다.
그리하여 업그레이드된 재질로 지금의 '미친소 ver2' 를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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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버전의 미친소 간판. since 2008년 8월 11일.


우리('소'간판 제작팀 : 송정아,김진수)의 목표는 한겨레 만평에 등장하는 3mb만큼 사랑받을 수 있는 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내구성을 위해 간판제작업체에 맡겨서 튼튼하게 제작했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희망제작소로서는 큰 돈(7만원 이상)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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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 티셔츠로도 제작되어 사랑받고 있는 3mb


희망제작소'소'(cattle)간판을 떼는 날을 기다리며

첫번째로 제작했던 '미친소' 종이 간판이 떨어진 후 희망제작소의 '소'를 다시 한글로 달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이 국면이 창조적으로 발전되어 '미친 소'간판을 다시 제작할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촛불시위는 100회를 넘겼고, 조계사에서는 촛불수배자들이 장시간 천막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복경찰 50여명은 조계사를 둘러싸고 수배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매일 밤낮으로 대기중이다. 며칠 전엔 촛불 문화제 사회를 두 번 봤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촛불시위대에 대한 집단소송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YTN,KBS,MBC 등 언론에 대한 권력의 통제도 점점 더 구체화 되어가고 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미친소 ver2' 간판을 튼튼하게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미친소 ver3'를 만들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건강하고 민주적인 소통의 시대가 절실하다.
그런 시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희망제작소가 '희망세탁소'로 오인되지 않을 만큼
'희망제작소'로서의 자기 소명을 다하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얼굴에 붙어 있는 저 소(cattle)를 본래의 소(所)로 바꿔달 수 있는 날을 맞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및 참고 사이트

http://blog.naver.com/arke77?Redirect=Log&logNo=60053657757
http://blog.naver.com/miyulain?Redirect=Log&logNo=150032188419
http://blog.naver.com/inupak?Redirect=Log&logNo=100051788191
http://hahabok.tistory.com/534?srchid=BR1http%3A%2F%2Fhahabok.tistory.com%2F534
http://blog.naver.com/sgenii?Redirect=Log&logNo=80052726923
http://blog.naver.com/mssql2000?Redirect=Log&logNo=100051481645


[이 글은 9월 5일 희망제작소 공공문화센터 블로그 '공공상상'에 올린 글임]
http://blog.makehope.org/publiccultures/entry/missingspaceorc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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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올 | 2008/09/11 22:35 |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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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앨리스 at 2008/10/10 09:37
아, 이런 사연이 있었네요. 살며시 읽고 링크 추가하고 갑니다.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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