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던 바로 그날 이용수 할머니와 발의자인 혼다의원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있다. | |
필자 소개 : 정보연
3대 도봉구 구의원 KYC(한국청년연합회) 공동대표 도봉시민회 공동대표(현) 희망제작소 기획위원(현) 현재 뉴욕 Columbia 방문 연구원 저서 : 치유와 키움, 기적의 풀뿌리주민운동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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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7월30일, 그날 미국 하원은 인권을 택했다2006년 KYC(한국청년연합회)와 일본청년단협의회는 청년들이 앞장서서 양국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뤄내자는 취지로 공동의 사업을 벌였다. 우선 당시 KYC 대표였던 내가 8월6일(1945년 원폭이 떨어진 날이다.) 히로시마를 방문해서 일청협의 평화 행사에 참여했다. 그날은 일본 전역의 평화 관련 단체들이 히로시마에 모여 “평화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일본 평화헌법을 지키고 다시는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을 하는 날이다. 일본인들에게 전쟁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기회였다.(사실 2차 대전에 대한 일본인의 기억은 상당히 복잡하다. 가해자임에 틀림없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피폭을 당한 경험 때문에 피해자의 기억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해 12월 일청협의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인들은 20세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21세기를 만들고자 하는지 직접 보고 돌아갔다. 그 겨울의 프로그램 중에 대구에 내려가 정신대대책위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난 그때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첫 시작은 좀 냉냉했다. 일청협의 대표도 참 좋은 사람이기는 했지만 부담스럽게 뭐 이런 프로그램까지 기획했나 하는 분위기였고, 사실 나도 조금 진부한 느낌이었다. 운동권 짬밥이 벌써 17년째인데 뭐 다 뻔한 이야기 아니겠어?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던지. 그래도 이 행사의 주최측 대표인데. 정말 주책없이 울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두 이야기가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몇 년 전 피스보트를 탔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일본 노인이 한복 입은 인형을 가지고 갑판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더란다. 사연을 물어보니... 그 노인이 젊었을 때 2차 대전에 참전해서 대만 근처 어딘가를 항해하고 있었는데 같이 가던 일본 배가 침몰했다고 한다. 그 배에는 조선 여자들과 일본 병사들이 함께 타고 있었는데 다른 배들이 일본 병사들은 구하면서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조선 여자들은 구하지 않고 그냥 가더란다. 왜 저 여자들은 구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상사인 일본군 장교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런 조센삐는(조선 소녀를 낮춰서 부르는 말) 얼마든지 있다. 뭐하러 구하나?” 그때 큰 충격을 받은 그 노인은 평생 한복 입은 여자 인형을 간직하고 지냈다고 한다. 일종의 사죄이리라. 죽기 전에 한번은 그곳에 가보리라 했던 그 노인이 인형을 가지고 피스보트에 탄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제안으로 남자 인형을 하나 구해서 바다 위에서 위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낯모를 이국의 바다에 빠져 죽었을 어린 조선의 소녀들과 그 가책으로 한평생 한복 입은 인형을 간직한 젊은 병사가 눈앞에 떠올라 참 많이 울었다. 일본군 위안부로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이용수 할머니는 전쟁 말기에 대만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당당하시지만 그 당시도 워낙 기세가 좋아서 말을 잘 듣지 않고 자주 싸웠다고 한다. 당연히 많이 맞았으리라. 그렇게 힘든 삶을 이어가던 중 가끔 찾아오던 일본군 장교가 할머니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해서 바닷가에 나란히 앉았다고 한다. 쏟아질 듯 총총한 별을 보며 그 장교가 말했다. “저 별 중에는 당신 부모님의 별도 있고, 내 부모님의 별도 있을 것이다. 당신 별도 있고 내 별도 있을 것이다. 이틀 후면 난 죽으러 간다. 저 별들 중에 어느 별이 떨어지거든 내 별이거니 생각하라.” 그러면서 할머니를 안고는 노래 한곡을 불러주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노래를 2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즉석해서 불러 준 그 노래가 어찌나 슬프던지. 최근 할머니가 자신이 있었던 대만의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고, 당시의 기록을 통해서 그 부대의 특공대들이 오키나와 전투에 가미가제로 참가해 많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 장교도 오키나와에서 죽었을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의 청년도, 식민지 조선의 소녀도 모두 불쌍해서 또 울었다. 역사가, 20세기가 어찌 이렇게 가혹했단 말인가? | 편지의 윗부분에 있는 두 여자가 보이는가?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하는 말이 들리는가? (*자세한 내용은 아래 첨부 파일 전문 참조) | |
『1942년 내 나이 19살, 일본군이 자바를 침공했습니다. 수천명의 여자와 아이들이 저와 함께 일본군에게 3년반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갇힌 곳의 문이 열리던 밤, 그 밤의 무자비한 강간의 기억 때문에 저는 평생 고문을 받듯 살아 왔습니다. 그들이 강간을 할 때마다 단 한번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와 모두 싸웠습니다. 당연히 반복해서 맞았습니다. 소위 “위안부”로 있는 동안 나는 밤과 낮으로 매일 맞고 매일 강간을 당했습니다. 나는 이제 그 일본인들을 용서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 날들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그 위안소에 있었던 동안, 일본인들은 나를 학대했고,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남겼습니다. 내 몸은 산산이 찢겨졌습니다. 일본군은 나의 젊음, 나의 자존, 나의 존엄, 나의 자유, 나의 가족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져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었고 아무도 나에게서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그 믿음과 사랑이 일본인들이 내게 한 모든 행동에도 불구하고 나를 살아있게 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위안부”는 침묵했습니다. 그것은 “위안부”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더럽혀졌다는 느낌을 안고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이 여성들의 망가진 삶이 국제적 인권 문제가 되는데 장장 50년이 걸린 것입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님. 내 온 삶을 다해서 이번 결의안에 보여준 미국 하원의 관심에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이 결의안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위안부” 생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그녀는 전쟁 이후 영국군 장교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고 현재 호주에 살고 있다. 1992년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 할머니들의 투쟁을 보고 “나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자신의 과거를 밝히던 날, 두 딸과 함께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오헤르너 할머니는 한국 할머니들과 함께 2007년 미하원의 위안부 청문회에 참가했다. 관전포인트 1“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vs “국익도 인권보다 우선하지는 않는다.”2007년 1월 제출된 위안부 결의안에 서명하는 의원이 속속 늘어나자 일본은 총력을 다해 방해에 나선다. 누군가는 일본 총리실의 공보비서실이 통째로 워싱턴에 왔다고 표현할 정도였고 4월에는 아베총리가 직접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미국을 방문한 아베총리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군대위안부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어제 미 의회 지도자들을 만난데 이어 오늘 부시대통령과 만나서도 일본총리로서 사과했다.”고 발표한다. 아니 사과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해야지 왜 부시에게 하나? 부시대통령은 더욱 가관이다. 역시 부시다.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불행한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아베총리의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러자 결의안의 발의자인 혼다의원은 “미국 대통령이 왜 아베 일본 총리의 사과를 받아들이는가? 부시 대통령이 성노예 피해자인가? 아베총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해야 한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난 일본사람들 좋아한다. 착하고 남을 잘 배려한다. 그런데 일본 정치인은 참 후지다. 거참 이상하다. 거기다가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일본측 로비스트들은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면 안 되는 정밀한 논리를 개발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공세적인 설득을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의 핵심 파트너이다. 일본을 자극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핵심 논리였다. 미국은 유럽의 영국처럼, 일본을 아시아에서 자신의 국익을 실현할 전략적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의 우선 과제는 국익이다. 뭐 크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국익과 다른 중요한 가치가(예를 들면 인권) 부딪칠 때, 그때가 문제이다. 그때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이 나온다. 이라크전쟁의 원인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결국 이라크에 없었다. 이라크전쟁이 잘못된 정보와 미국의 광기에 의해 저질러진 침략행위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 세계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 전쟁에 동참했는가?”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도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던 즈음에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해서 많은 정치인들이 국익을 이야기했다.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논하던 상식 이하의 사람들은 제외하고 그나마 상식이 좀 있어 보이는 정치인들의 논리는 “북한과 미국이 마주보는 기차처럼 달리는 상황에서(그 당시 북미관계는 최악이었다. 미국 조야에서 수시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가 언급되고 있었다.) 이라크 파병을 지렛대로 일단 미국의 군사적 조치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반도 긴장 완화라는 국익을 위해(이라크 파병이 정말 미국의 군사적 조치를 막는 지렛대로서 기능했는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견이 많다.)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 랜토스. 이 사람이 랜토스의원이다. 옆에 있는 아내가 그의 인권분야 보좌관이다. 한인유권자센타의 김동석소장도 랜토스의원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전에 먼저 그 아내를 만나서 설득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랜토스의원은 올초 운명을 달리했다. | |
미국의 의회도 당연히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국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랜토스의원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다. 참 어려운 시절을 살아낸 사람이었다. 이념과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광기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스스로 인권을 자기 정치의 핵심 가치로 삼고 활동했으리라. 그는 일본의 막강 로비도 콧등으로 듣고, (이용수 할머니와 오헤르너 할머니 등이 참석한 위안부 청문회 이후 상황이 급변하자 일본대사는 “의원초청 일본식 다도회(茶道會)”를 개최하여 일본 다도에 깃든 “평화와 조화”에 대해서 알리는 속이 뻔히 보이는 행사를 개최한다. 수차에 걸친 초청으로 어쩔 수 없이 참가한 랜토스의원은 그날 다도 강사인 “센 게시추”가 카미카제 특공대 출신이라는 것을 듣고는 “과거의 자살특공대가 지금은 워싱턴에 와서 세계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모순(Clash)”이라고 면박을 주었단다.) 결의안이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외교위원회를 통과할 때는 의원 한명 한명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도록 하는 롤콜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했으며, (결의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최대한의 정치적 부담을 주기 위해서, 또 미하원이 인권문제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해져야 한다는 경종의 차원으로 해석된다. 실제 결의안은 외교위원회를 39대 2로 통과했는데 의회내 뉴스레터인 <넬슨리포트>는 반대한 두명의 의원을 “워싱턴서 가장 용감한 정치인”이라며 조소하였다.) 미하원 본 회의에서는 “역사를 왜곡, 부인하고 희생자들을 탓하는 장난을 일삼는” 일본 내 일부 인사들의 기도에 대해 “구역질나는 일”이라며 의회에서는 잘 쓰지 않는 용어로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인권과 평화 이슈에서는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워싱턴 정가의 “인권 챔피언”임에 틀림없지만 유태인답게 이스라엘과 관련해선 네오콘들의 외교정책과 궤를 늘 같이했다. 그래서 그는 민주당의 지도급 정치인이었으면서도 부시의 이라크전쟁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미하원은 2007년 7월30일, 그날만은 국익이 아니라 인권을 택했다. 결의안이 통과된 뒤 낸시 펠로시 의장은 이용수 할머니를 껴안으며 “당신이 미국정치권을 올바른 리더십으로 인도했다. 정의는 이렇게 이긴다. 그것이 우리의 신념이다.”라고 말했단다. 나 같은 시민운동가는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상적이다. 정치가는 현재를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약간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국익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7년 7월30일의 미국 하원처럼 아주 가끔은 국익을 넘어선 이야기도 하기 바란다. 국익이라는 이유로 정의롭지 않는 전쟁에 참여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 121로비스트들. 이 사람들이 바로 그 울트라캡숑 풀뿌리시민 로비스트들이다. 워싱턴의 골리앗 로비스트들을 때려 눕히고 121 결의안을 통과시킨 주역들이다. | |
관전포인트 2 시민 vs 로비스트위안부 결의안의 통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자 일본은 거물급 로비스트들을 고용해서 본격적인 로비에 나섰는데 그 중에는 전직 하원의장이었던 토마스 폴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히 총 공세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다. 한국에서도 “여의도 정치”하면 어딘가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민심과는 거리가 먼 정치를 하는 그런 느낌인 것처럼 미국에서도 “워싱턴 정치”라는 말은 여러 가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로비스트에 둘러싸인 정치를 표현할 때, 로비스트에 의해서 민심이 굴절될 때 자주 쓴다. 그만큼 미국 의회에 대한 로비스트들의 영향력이 세다는 뜻이리라. 여하간 일본이 고용한 “거물” 로비스트에 맞서 한인유권자센타 등 관련 단체의 활동가들도 모두 “풀뿌리시민” 로비스트로 변신한다. 일명 “121 스트리트 로비스트.” 용어 정의 : 의안번호 121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회관에서 의사당으로 가는 길목에 기다리고 있다가 의원들이 나타나면 번개처럼 접근하여 2분 안에 설득을 하고야 마는 초고강도 울트라캡숑 로비스트들. 로비스트의 면면들 : 하원의 의사일정이 평일에 있으므로 평일 시간이 되는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주로 구성된다. 어떤 날은 뉴저지 포트리에 있는 노인 아파트에서 100명의 한국 노인들이 대거 참가하기도 했단다. 사전 교육 : 기억은 가물가물, 영어는 거의 서바이벌 수준인 노인들이다 보니 워싱턴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철저히 교육하는 것은 필수 코스이다. 그 교육의 내용은 일단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차원에서(좀 재미있는 표현으로 썼다. “이 결의안의 중요성을 알리는 차원에서”가 정확한 표현이다.) 위안부의 삶을 다룬 비디오를 한편 보고, 다음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특히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공부한다.“위안부에 관한 진실”이라는 피켓을 목걸이처럼 걸기 때문에 영어 표현은 간단하게 하면 된다. 코디네이터 : 이 로비스트를 이끄는 코디네이터들은(관련 단체의 활동가들) 의원들의 얼굴, 이름, 지역, 성향을 정확하게 암기해야 한다. 의원이 나타나면 곧바로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밤새 외웠다고 한다. 주의 사항 : 의사당 앞에서는 5명 이상 모여 있으면 안 되고, 멈추어 있어도 안 되고, 또한 의원들의 진로를 방해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3-4명의 노인이 한조가 되어, 계속 걸어 다니면서 의원들을 만나야 한다. 한조가 그렇게 하다가 지치면 다른 조가 교대하고, 또 교대하고... 정말 대단한 로비이다. 강력한 적수를 만나면 : 점잖게 설득해서는 꿈쩍 않는 의원들이 간혹 있다. 그러면... 코디네이터가 TV 카메라를 들고 따라 붙는다. 그러면 아무리 딱딱한 의원도 정중해지고 대답이 부드러워진다. 한인 언론을 대동하고 가면 분위기는 더욱 좋아진다. 거기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선거 때 재미없다는 으름장까지 적당히 섞으면 어떤 정치인도 버티기 힘들다. 이렇게 해서 2007년 1월31일, 7명의 의원으로 출발한 121 결의안은 3월말 65명을(이 정도면 관련 상임위인 외교위원회 통과가 낙관되는 수준이다.) 훌쩍 넘고, 5월초 110명의 서명을 받더니(위안부 결의안에 호의적인 워싱턴 정치인들이 100~120명 수준이 되면 본격적인 의결 절차에 들어가자고 했다.) 결국 168명의 서명을 받아 7월30일 하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정말 대단한 “풀뿌리시민” 로비스트들이다. 대개의 경우 로비스트와 시민이 한판 붙으면 막강한 돈, 로펌의 연구력, 인맥을 가지고 있는 로비스트들이 이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근데 이것도 아주 가끔은 다윗이 이기기도 한다. 그래서 사는게 재미있다. | 가운데가 혼다의원이다. | |
로비하면 혼다의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혼다의원은 이 결의안의 발의자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계 미국인이다. 그의 이력도 랜토스의원 못지않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미국은 일본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일본계가 주로 모여 사는 서부 지역에 10개 “수용소”를 만든다. 높은 철조망에 무장 군인들이 배치된 이 수용소에는 10만명이 넘는 일본계 민간인들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강제 수용되었다. 분명 미국 시민이었지만 적국인 일본 혈통이란 이유만으로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미국 정부는 그 후 40년이 훨씬 지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에 와서야 과오를 인정하고 재미 일본인 사회에 공식 사과했다. 당시 간난 아기였던 혼다의원도 6살이 될 때까지 포로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경험으로부터 혼다는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발생해서는 안 되며 일본은 평화라는 방식으로 세계에 기여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재미 한인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기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만약 북한과 미국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재미한인들의 인권도 제약받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라. 일본계 의원에게 가해졌을 일본의 로비를. 어떻게 일본계 의원이 일본에 불리한 결의안을 발의할 수 있냐는 비난을. 더구나 그의 지역구조차 일본계가 상당히 많은 곳이란다. 결의안 통과 후 일본계로부터의 후원이 줄었다고 한다. 그 덕에 한인 사회에서 혼다를 후원해주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오직 자신의 신념으로 그 로비와 비난을 뚫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워싱턴의 거대 로비스트를 물리친 그 기개를 높이 사서 오바마 캠프에서 입각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단다. 풀뿌리대통령 오바마가 풀뿌리 시민들과 함께 큰일을 해낸 혼다를 알아본 것이다. 좋은 팀이 되지 않을까? | 낸시와 함께. 결의안이 하원 본회의를 통과한 그날, 낸시 펠로시의장과 이용수 할머니가 기쁨을 나누며.. | |
역사적인 121 결의안다음은 위안부 결의안 중 일부이다. 2007년 7월30일 미하원이 보여준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긴 시간 버스를 타고 워싱턴에 가서 하루 종일 거리를 걸어다니며 의원을 만났을 포트리의 이름 모를 한인 할아버지께도 깊이 감사한다. 『다음은 미 하원의 공통된 의견이다. 1.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전시에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의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2. 일본 총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를 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과 수준에 대해 되풀이되는 의혹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일본 정부는 일본군들이 위안부를 성의 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4.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제시한 위안부 권고를 따라 현 세대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 1년 동안 Columbia 대학에 와 있는 필자는 현재 한인유권자센타(KAVC)에서 인턴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인유권자센타로부터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막전막후 이야기를 듣고는 꼭 한번 관련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그 운동에 참여한 바 없으면서도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인유권자센타 김동석소장님 이하 여러분들께 제 주제넘음에 대해 이해를 구합니다. 이 글은 온전히 이 운동에 헌신한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